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2020.snbokji.net/sub_read.html on line 3
유산기부를 실천하다. | 이슈N칼럼 | 소통/공감 | 성남복지이음

유산기부를 실천하다.

 “고급 요양원에서 살라구요? 나는 그렇게 안 살아요.”

성남시의 자랑 명불허전 홍계향 할머니

  

지난 6월 ‘행복한 유산 기부 성남시 1호’로 이름을 올린 홍계향 할머니를 만났다. 기부한 4층 빌라(시가 5억 5천) 건물은 할머니가 반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으로 사후에 성남시에서 저소득층 복지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였다.

 

▲  사진출처 : 성남시

 

“유산 기부에 관한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예전부터 알던 아주머니랑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할머니 그럼 죽으면 어떻게 할거야?’ 그러기에 나 죽으면 시에서 알아서 하겠지 했더니 ‘죽기 전에 해야 제대로 될텐데’ 그 말에 내가 힌트를 얻어 바로 다음 날 시장 찾아 나섰지요. 전에 시장실 체험 한 적도 있고 내가 길을 모르나? 내 입이 길인데 그냥 바로 찾아갔지” 하며 기부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그 결단력과 실천력에 놀랐다.

  

"고급 요양원에서 살라구요? 나는 그렇게 안 살아요.”

 “건물을 올리자는데 돈이 있어야지요. 업자가 와서 비용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며 짓는데 그동안 우리는 움막에서 살았어요. 완공되고 나서 3개 층에 각각 전세 8천을 업자들이 빼가는데 우리한테는 그게 2억 4천 빚이더라구요. 공터에 야채 심어 노점상도 하고, 청소등 힘 닫는 데로 벌어 세입자들 돌려주고 사글세로 바꿨죠. 지금은 보증금을 많이 낮췄어요. 전세금이 다 빚인데 그랬더라면 기부는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그래도 집이 잘 지어져서 3층에 살고계신 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우리 식구만 살면 되는데 큰 집이 왜 필요했겠어요? 어쩌다 보니 생긴거죠. 죽고 나면 그만인데 이 집이 좋은 일에 쓰이면 감사하지.

사람들은 팔아서 고급 요양원에 들어가 편하게 살지 왜 그랬냐고 하데요. 나는 그렇게 안 살았어요. 성남에서 벌어서 살았으니까 성남으로 돌려보내는 게 맞지요. 나는 지금 이 동네가 좋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랑 지내다 가면 되지요. 여기 가까운 동생은 내가 기증했다니까 ‘언니야 그럼 이제 갈 데 없으면 나랑 여기 조그만 쪽방 얻어 살자’ 하더라구요. 내가 금방 집 비워줘야 하는 줄 알고 그러기에 그 맘이 어찌나 고맙던지. 아니다 내가 여기 살다 죽으면 그 다음에 기증하는거라구 설명해줬지요. 이런 동네를 어떻게 떠나겠어요. 여기서 이렇게 살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거지.”

 

 

사후장기기증을 하니 마음이 좋습니다. 

2006년에 할머니는 서울대학교에 ‘사후장기기증’도 하였다. 

 

 

 

 “내가 그런 게 있는 걸 어찌 알겠어요? 이웃집 병문안 갔다가 옆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듣고 돌아와 나 같이 연고 없는 사람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114에 전화를 걸어 묻고 또 물어 하게 되었지요. 하고 나니까 그리 마음이 좋습디다. 차타고 덜컹거려 사람들이 아이쿠 해도 나는 가면 또 몇 사람 살린다하니까 그것도 괜챦다 싶어요.”

 

체구도 작으신 분이 좋은 일에 어찌 그리 빠르시냐고 여쭈니 “난 생각하면 바로 해야 해요. 그렇다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도 부자집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이 없어요. 나는 나대로 사는갑다. 너희는 너희 대로 살아라 이런 마음이었지. 가만히 생각해 봐도 부러웠던 게 없어요. 나는 이렇게 내 재미로 살아요” 이렇게 말하며 웃는 소리가 유쾌하다. 또한 기부라는 것이 누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마음에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며 본인은 직접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한 게 아니라 실감이 안 난다 하며 겸손해 하신다.

 

얼마 전 청와대를 방문하여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한 외국 여성을 가리키며 “이 분이 의사인데 서울 뚝방 판자촌 어른들을 40년을 돌봐주었데요. 외국 사람이 저렇게 해 줬다는 게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36명이 둘러 앉아 무슨 일 했다고 한마디씩 하는데 다 귀하고 좋은 사람들 이예요.”

 

사람들이 건방지다고 했을까? 그래도 할 말 해야지요.

 

 

“내가 유산기부식 할 때 시장님한테 ‘2번 당선돼서 축하해요. 부정부패 비리 저지르지 말고 월급으로만 살아요.’ 하니 시장님이 ‘네 알겠습니다.’ 하더라구요. 사람들이 건방지다고 했을까? 그래도 할 말 해야지요. 청와대 갔을 때도 비서들이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데 내가 대통령을 딸처럼 안고 ‘엄마 아빠 뜻하지 않게 일찍 잃고 결혼도 않고 나라를 어깨에 멨으니 얼마나 힘들겠노’ 하며 내 마음을 전했어요.”

할머니의 이 당당함과 따뜻함은 어디서 오늘 걸까? 할머니는 현재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도홍보사절단, 금연홍보 캠페인, 저소득층을 위한 식품나눔 자원봉사등의 사회적 활동에 부지런히 참여하시고 건강을 위해 복지관에서 자전거도 타시고 노래 프로그램도 수강하시며 즐겁게 살고 계신다.

 

유산 기부이후 할머니는 너무나 맘이 편하고 행복하다. 할머니 삶에 뒤늦게 꽃이 활짝 핀 것 같다. 지난 60년간의 결혼 생활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고 말끝을 흐리는데 차마 일일이 옮기기 힘든 할머니의 지나간 시간이 짐작된다. 폭력 남편, 맞고 사는 엄마처럼 살기 싫어 결혼 하지 않겠다며 살다 병으로 죽은 딸. 딸애가 이혼하라 했을 때도 ‘무슨 소리냐 여자가 끝까지 한 집에서 살아야지’ 하며 지켰던 결혼 생활. 온 몸에 맞은 멍자국이 떠날 날이 없었는데도 남편이 밉지 않았냐는 말에 “아유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살기 바빠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라는 대답에 조금만 힘들면 투덜대며 깨뜨려 버리는 우리의 삶이 부끄러웠다.

 

“부부 간에 싸우지 마라. 둘 중에 나은 사람 하나도 없이 똑같다.

 

▲  © 성남복지넷

할머니와 헤어지며 나눈 인사말이다. “부부 간에 싸우지 마라. 둘 중에 나은 사람 하나도 없이 똑같다. 서로 서로 양보하고 잘 살아야 한다." 교과서 같은 이 말이 울림이 되는 것은 자신의 지나간 모습에서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내 삶이 어렵고 힘들면 남을 위해 좋은 일을 결정하기 힘들 수 있는데 그런 어려움, 고통들을 다 녹여내고 좋은 일에 자신을 던지는 할머니의 용기에 깊이 감동 받는다. 선행은 나중에 여유 있을 때, 평안할 때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글 : 복지정보통신원 임성혜(작가)

기획 : 복지정보통신원(이경희)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성남복지이음이 창작한 '유산기부를 실천하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4유형(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는 담당자와 사전에 협의한 이후에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 편의성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자동 입력 방지 CAPTCHA